철학

레오나르도 다빈치

훈글 2020. 3. 15. 18:48

레오나르도 다빈치

예술가들의 예술가. 호기심과 창조성의 신. 천재라 불리지만 아주 인간다운 남자.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열두 살까지 피렌체 서쪽에 있는 도시 빈치에서 살았다.

레오나르도가 직업교육을 받기 시작할 나이에 아버지는 그를 피렌체로 데려왔다.

아들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고, 무엇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는 것을 깨달은 아버지는 레오나르도에게 본인의 가업을 물려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레오나르도의 첫 교육은 주산학교를 다닌 것이었다.

그곳에서 실용적인 수학을 배웠고, 이것은 훗날 그의 과학연구에서 유추를 통해 패턴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열네 살이 되던 해쯤에 아버지가 소개해줘 예술가 베로키오 밑에서 도제 교육 시작하게 되었다. 베로키오의 작업실은 주로 메디치 가문을 위한 장식 묘비, 청동상, 골동품 관리. 성모마리아 그림을 만들어 파는 공방이었다.

 

이 공방은 그가 추구하는 예술적 완벽함을 닦는 발판이 되었다. 그는 특히 인물을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해부학에 관심이 많았다. 피부를 벗겨보고 근육과 신경을 관찰했다. 또한 도마뱀, 나비, 박쥐 등을 수없이 해부하고 조립했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그림은 베로키오와 함께 그린 도비아와 천사, 그리스도의 세례가 있다. 특히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를 보고 베로키오는 붓을 놓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는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지만 실제로 베로키오는 레오나르도와 함께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그린 수태고지는 레오나르도 단독으로 그리진 않았지만, 그가 주로 그렸다고 추정하고 있다.

수태고지그가 그리지 않았다고 해야 믿을 정도로 그림이 불균형한데 실은 이 그림이 전시될 곳은 관람객 기준에서 정면이 아닌 오른쪽 위에 걸어 둘 예정이기 때문에, 오른쪽 아래에서 감상을 해야 균형이 맞아진다고 한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고려한 이 작품은 이는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에          <그리스도의 세례>,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둥이 고르지 못한데 보는 사람은 고르고 균형 있게 보이는 것처럼

실제보다 더 실제를 배려한 철학이 담긴 예술이고 르네상스였다.

                                                                           

<수태고지>,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지만 이상적인 완벽을 추구한 그는 의뢰받는 작품을 대부분 미완성으로 남긴다.

의뢰인에게 시기에 맞춰 작품을 전달하지 못했고 이는 곧 후원자들의 환심을 얻지 못할 것으로 연결된다.

누구보다 레오나르도 자신이 가슴 아팠을 것이다. 그의 전기를 쓴 로마초가 이러한 점을 잘 드러내준다.

레오나르도가 시작한 작품을 하나도 제대로 못 마친 이유는 예술에 대한 그의 이상이 너무 원대해서 다른 사람 눈에는 기적처럼 보이는 작품에서도 결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 로마초 -

 

이때 레오나르도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피렌체를 떠나는 것이다.

당시 피렌체는 예술가들의 위대한 후원자, 로렌초 데메디치가 있었다.

피렌체는 주위 도시국가들은 교류를 하고 있었고, 로렌초 데메디치는 예술적인 문화를 피렌체의 영향력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메디치가문의 총애를 받던 보티첼리는 교황이 있는 로마로, 베로키오는 베네치아로, 레오나르도는 밀라노로 예술 외교를 위해 가게 되었다.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짐을 모두 챙겨서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17년을 생활하게 된다.

 

남자가 피렌체에서 배울 것을 다 배웠다면, 하루하루 짐승처럼 사는 것을 넘어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곳을 떠나야 한다.” - 바사리 -

 

  • 참고문헌

<레오나르도 다빈치>, 월터 아이작슨, 아르떼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