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림트
황금의 화가, 키스의 화가, 화려한 작가 등 여러 수식어를 고민하다 그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머리를 긁적이며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구스타프 클림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황금을 소재로 한 그림, 그중에서도 남자와 여자가 서로 안고 입을 맞추려는 듯한 그의 대표작 『키스』가 떠오른다. 또 그가 늘 입고 다니던 수도승이 입을 듯한 헐렁한 가운과 굳은 의지 안에 무언가 평온해 보이는 눈빛이 생각난다. 클림트의 예술혼이 느껴지는 인상이랄까. 그의 헐렁한 가운 주머니에는 『신곡』과 『파우스트』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오스트리아, 제국주의의 마지막이 클림트가 살던 시대였다. 민주주의와 자유혁명의 본지인 프랑스와 근접해 있음에도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황제와 관료주의를 따랐던 오스트리아인들은 낭만적이었다. 프랑스와는 다른 느낌의 낭만이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개인주의적 낭만을 추구했다. 정치는 어쨌거나 그들은 악기를 다루고 그림을 그리며 삶을 영위했다. 그들 민족은 예술 앞에서 귀족과 시민을 가리지 않았다. 생활 속에 늘 춤과 음악, 그림과 글이 있었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사랑은 오스트리아인의 근간이었다.
- 클림트의 등장
클림트는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금세공업자였던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클림트는 장식공예학교를 졸업하고 ‘예술가 컴퍼니’라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사업체를 설립하였다. 이 사업체는 건물이나 성벽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다.

부르크 극장에서 <극장의 발전>, <로미오와 줄리엣>. <구 부르크 극장 객석>로 이름을 알리게 된 클림트는 자아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앞에 세 점의 그림은 초기 클림트의 작품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클림트만의 특징을 찾아보기 어렵다. 잘 그리긴 했지만 개성이 없는 작품으로만 보인다.
<클림트, 구 부르크 극장 객석>
- 전환기
부르크 극장에 이어 빈 미술사 박물관까지 성공적인 작품을 선보인 ‘예술가 컴퍼니’에게 빈 대학 본부 건물의 천장화의 의뢰가 들어왔다. 하지만 클림트는 그의 동생 에른스트가 죽자 몇 해 동안 그림을 그리지도, 청탁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결국 ‘예술가 컴퍼니’는 와해되었다.
- 천재의 등장
클림트는 기존의 사실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원해 새로운 조직을 결성했다. 기존 빈의 예술에서 벗어난다는 뜻에서 ‘빈 분리파’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순수예술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장식예술과 건축으로의 영향을 받았다. 빈 분리파가 개최한 전시회에서 클림트의 화풍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빈 대학 본부 건물의 천장화의 적임자를 차지 못했던 문화 교육부 측은 클림트에게 ‘철학’, ‘법학’, 의학‘을 주제로 맡아달라고 의뢰했다. 하지만 화풍이 달라진 클림트는 의뢰인들이 원하던 소위 성스러워 보이는 예를 들면 <아테네 학당>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그렸다. 진리에 다가갈 수 없는 인간의 무지함을, 인간이 만든 법으로 인간을 벌한다는 것에 대한 어리석음을,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당시에 온갖 비평이 쏟아졌지만 정작 클림트 자신은 빈 대학 천장화에 만족한다는 의견을 알리며 금붕어가 그려진 그림으로 비평가들의 허세를 비웃었다.
클림트는 위대한 예술가 베토벤을 찬양하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뚜렷하게 알렸다. <베토벤 프리체>는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베토벤의 그 결연한 의지를 존경하며 예술의 승리를 주장한 작품이었다.
구스타브 클림트 천장화 <철학>
- 다음 편에 이어서 -
참고문헌
- 클림트 X 전원경, 클래식 클라우드 <arte 출판사>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오나르도 다빈치 (0) 2020.03.15 아방가르드, 클림트. (0) 2020.03.07 루소처럼 (0) 2020.02.24 루소, 자연으로 돌아가라. (0) 2020.02.16 비구 법정 (1) 2020.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