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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클림트.철학 2020. 3. 7. 19:22
클림트 예술의 절정
원래 여행을 즐기지 않았던 클림트도 거장들의 흔적이 있던 이탈리아만큼은 여러 번 방문 했다.
그곳에서 그의 대표작이라고 불릴 만한 작품에서 나타나는 모자이크와 황금칠을 하는 기법을 영감 받게 된다.
예술의 암흑기라 불리만한 중세기에 평면적인 작품을 보며 정교하게 표현된 사실주의가 아닌 평면만이 담고 있는 상징성을 깨닫게 된다.
이후 그의 화풍을 보면 난해한 문양들, 모자이크와 황금으로 만든 『키스』, 『다나에』,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등을 만날 수 있다.
그의 대표작 『키스』에서 황금빛으로 채색된 남녀가 입을 맞추고 있다.
둘에 밑에는 아름다운 꽃밭이 있고 그들에 뒤에는 낭떠러지가 있다.
가족의 죽음을 겪으며 ‘죽음 앞에 인간은 보잘것없는 존재이다.’라는 생각을 염두 해 두고 살았다.
그가 냉소적이 되지 않은 이유는 죽음 앞에서 우리 인간이 살아가야 되는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낭떠러지를 뒤에 두고도 입을 맞출 수 있는 숭고한 사랑이 우리들의 삶에 이유라는 것을 클림트는 자신의 황금빛 작품을 통해 화려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와 여인들
“여자가 없는 클림트는 상상할 수가 없다.” - 언론인 프란츠 세르베스
그의 아틀리에에 반나체의 모델들이 늘 뒹굴고 있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클림트를 조금만 따라가면 쉽게 알 수 있다.
클림트는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어떤 마음으로 여자들을 만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추정은 해보자면, 여인들은 그에게 순수한 욕망에 대상이자 창조적 에너지였다.
그는 본인과 가장 가깝지만 다른 존재인 ‘여성’을 탐구하므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려 했을 수도 있고, 그저 순수한 욕구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는 두 가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총체적인 대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떤 매력이 있었기에 많은 여인들이 그를 따랐을까.
그의 사진을 보면 외모로 매력을 어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시대적으로 당시 빈 사교계는 기혼자들의 성과 연애에 의외로 관대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매력을 충분히 설명하기 부족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의 작품에 있다’ - 클림트-
황금기법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에는 여인들이 가슴을 내놓고 관능적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성에 대해 능동적이고 욕구를 쉽게 표현하는 여성은 조신하지 못하다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부정하는 모습을 작품에 표현했다.
이런 여성들에 욕망을 대변해주는 공감능력이 그의 매력을 어필하는 데 한몫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9세기 사실주의에 막을 내리고 20세기 상징주의를 연 독보적인 화풍의 예술가 구스타브 클림트.
다음 여행은 그에 발자취를 따라 빈으로 가고자 한다.
그때는 나도 예술가 냄새가 나는 인간이 되어있길 슬쩍 바라본다.
오스트리아 예술가 조합에서 거장을 떠나보낸 추도문으로 마치겠다.
“예술은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인류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잃었다”
참고 문헌
클림트 X 전원경, 클래식 클라우드, arte 출판사